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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서평 및 후기

서평/해외소설

by 느지막 2023. 10. 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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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예스리커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저자 : 마쓰이에 마사시
번역 : 김춘미 옮김
출판사 : 비체





읽기 전에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나에게 여름의 시작을 준비하는 책이었다. 작년 여름 처음 구매를 하였을 때는 독서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책을 함께 구매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완독자가 없는 씁쓸한 책으로 남았었다. 그리고 다음 해 여름을 맞이하여 꼭 완독을 해야겠다는 목표로 시작하였다. 일 년이 지나니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책 특유의 밋밋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줄거리

책의 대부분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흘러간다.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보내다가 우연히 자신이 존경하는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간 주인공. 여름을 맞이한 사무소는 근무지를 여름별장으로 옮기고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참여한다. 여름별장에서 건축에 대해 분석하고, 밥을 해 먹고, 자연과 이웃과 어우러진다.



인상 깊은 구절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다는 것은 건축이 잘 됐다는 이야기야."
  (중략)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 12장 180p

  각자의 걷는 속도에 맞추어 죽음의 세계가 다가온다. 진입로 왼쪽에 있는 낮고 하얀 담은 여행을 지탱하는 지팡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세계와 죽음의 세계의 경계처럼도 보이는 한 줄기 하얀 선. 그 경계는 한참 앞의 막다른 지점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우리 바로 곁에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13장 186p

  "불합리한 것이나 억지 등 여러 가지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할 때가 있지.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야."
엔진 소리만이 차 안에 울리고 있었다.
  "우치다 군은 셔터를 내려버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 놓고 불합리하거나 억지를 잠자코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자기가 다치지 않고, 잘 흘려보내기 위한 방위책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래서는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되거든."
  선생님은 나한테가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우치다 씨한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하고 싶지 않은지, 점차 모르게 돼. 알겠나?"
  "네."
  "말도 안 되는 것에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 갈 수 없게 된다고." - 22장 352p


읽고 나서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는 책이 가지는 풋풋한 느낌이 좋았다. 내가 여름별장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표현이 좋았고 그렇기에 건축에 대한 묘사가 지루하기도 했다. 이 서술 방식은 2/3까지 계속된다. 이 책을 도중에 덮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우리의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보는 느낌. 나는 이 책을 계속 읽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꺼내보았기에 완독 하는데 여름이 끝나버렸다.

이대로 끝나나 싶을 정도로 페이지가 어느 정도 남지 않았을 때. 연애도 했으니 결혼하고 경합만 하면 마무리가 되려나 하는 시점에 사건이 생겨버린다. 갑작스러운 진행에 놀랐다. 지금까지 밋밋한 진행과 달리 사건은 급작스럽게 흘러간다. 우리의 인생의 큰 사건이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처럼.

책의 마지막쯤 되었을 때 내가 하이라이트 쳐놓았던 대사들을 돌아보았다. 오래된 건물에 대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주장에 관한 이야기 등

그리고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이 여름이 오래 남아 있을 거라는 것을 느꼈다. 평이하다고 느꼈던 그 여름별장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더 아득하게 느껴졌다.

중간까지는 이런 밋밋한 소설을 많은 사람이 읽었다고 재밌었다고 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었는데,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앞의 지루함은 희석되고 마지막의 여운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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